예수평론

광해와 대선

sonjengho 2012. 10. 6. 11:03

광해- 왕이 된 남자 그리고 대선


정말 모처럼 우리나라 영화를 보았다. 나는 헐리우드 영화 중독자라 국산 영화는 보지 않는다. 국내 영화 관계자들에게 너무 송구하지만 욕하지 말고 이런 영화관객도 있다고 보아주기 바란다. 헐리우드 영화는 볼 때마다 만들기는 참 잘 만든다는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천만 명의 관객을 내다보는 국산 영화를 애써 외면하는 것은 이 영화에 나오는 대사 일부로서 사대적인가. 뼈까지 사대적이라는 혹평을 피해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중독되어 있으니 달리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광해군처럼 양귀비에 중독되고 분냄새에 중독되고 후궁에 중독되면 달리 어찌 하겠는가?


이 기회에 생각을 바꾸어 외화와 방화를 병행 관람해 볼 참이다. 광해를 보고 우리나라 영화의 질과 수준을 헐리우드 영화에 중독되어서 올바르게 이해도 평가도 할 수 없었던 것을 반성하는 바이다. 역시 편식은 나쁜 것임이 틀림없다. 볼까 말까한 피에타도 국산 영화라는 오직 그 이유 땜에 제낄까 했는데 재고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광해 영화는 정말 아름답게 편집되었다. 한 컷 한 컷이 독립적 그림으로 참으로 예쁘고 그 연결이 리드미컬하게 넘어간다. 촬영의 미와 완전성을 감득한다. 영화의 전개는 격하지 않다. 잔잔하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밋밋하고 평면적이다. 하지만 입체적이고 격하고 기승전결이 뚜렷한 영화보다 나쁘지 않다. 보기에 따라서 오히려 그 반대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영화이다. 관람 후 감독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크레딧을 유심히 보았는데 추창민 감독이라고 한다. 나는 추창민 감독을 전혀 모른다. 이번 광해 영화로 존경의 념을 표해 드린다. 


시나리오도 유려했던 것 같았다. 보면서 스토리텔링 형식을 빌었다고도 생각했다. 광해군의 대용물 가짜 광해군을 영화 플롯의 주축으로 이끌고 간 것은 오래 전에 본 미국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도 사용된 아이디어인데 광해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가 연상되었다. 좌우간 광해 영화의 그러한 발상은 역발상으로 이것이 재미를 더하면서 던지고자 한 메시지 전달에도 성공한 주된 요인이었다고 보여진다.


영화가 의도했던 것이었는가는 불분명하지만 대선을 앞둔 지금에 이 영화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 시사는 매우 근본적인 것이다. 즉 그것은 왕권 다시 말해서 대권은 백성과 국민을 섬기는 것이라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효과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지지파와 반대파, 보수와 개혁, 제도와 개인, 서민층과 권력층 사이의 비애를 가짜 광해가 진정한 왕으로서 행세하는 말과 행동 요컨대 휴먼 드라마적 사랑의 언행을 보여줄 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 정치의 비정함을 녹여내는 유일한 행동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인상적 장면은 가짜 광해가 생명을 부지하고자 산속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장면과 경호대장이 돌아온 가짜 광해의 신발 없는 발을 떨리는 손으로 만지는 장면이다. 그것은 조직과 제도와 권력과 직무와 정치를 초월하는 사랑의 행위이다.  가짜 광해는 백성을 섬기는 사랑의 행동과 말을 많이 했다. 경호대장은 자기 직무에 고지식하게 충실했지만 가짜 광해의 왕노릇 행동에서 진정한 왕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아간다. 제도적 왕으로서 광해는 경호대장에게 가짜 왕이고 대용물인 가짜 광해는 진짜 왕이다. 이렇게 변하게 된 것은 가짜 광해의 왕노릇에서 진정으로 백성을 아끼고 섬기고 사랑하는 왕이라면 어떤 언행을 보여줄 것인지가 지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의 박 후보, 문 후보, 안 후보 가운데 누가 진정한 왕노릇할 수 있는 인물인가? 누가 백성을 가장 잘 섬기고 사랑하고 위할 인물일 것인가? 현실정치의 비정함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다른 한편 사랑의 가치를 잣대로 해서 세 대선 후보를 평하는 정치적 판단과 행위가 불필요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박 후보가 그런 인물이라고 본다면 나는 그는 유신 독재와 군부 정권의 역사적 이데올로기의 프로퍼간다에서 탈피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다. 문 후보가 그런 인물이라고 본다면 국민의 희망을 역사적 소명으로 받들어 모시지 못하는 민주당의 게으름과 나태와 무능을 심각하게 숙고하지 못했다고 본다. 그들도 역시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국민 사랑보다 권력 사랑이 더 강한 것이다. 사랑하지 않기에 민주당의 조직과 인물 등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쇄신과 변혁은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박선숙 전 의원이 안 후보의 캠프로 간 것은 대단히 상징적인 일이다. 민주당을 떠난 그녀는 지금도 민주당의 쇄신을 주창하고 있다. 안 후보가 그런 인물이라면 그가 역사적 현실 속에서 국민 사랑을 어떻게 실천했는가 하는 문제는 간과되고 있다. 그는 정치 신인이므로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 정치 입문 전후 한 사회적 공헌과 기여의 정도는 훌륭하다고들 하지만 말이다. 그 문제는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문제이다. 따라서 안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현재의 근거 없이 미래의 희망을 담보로 그가 국민을 사랑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국민 개개인은 저마다 세 후보에 대한 일리와 무리 속에서 선택할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인가? 나는 문 후보에 내기를 건다. 바라기는 그가 민주당 쇄신이라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제스처를 보여주고 국민의 민주적 가치 의식 이를테면 경제 민주화, 교육 민주화 등등을 실질적으로 보증하는 여러 조치를 취한다면 그의 국민 사랑은 신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것이다. 선거 공학과 전략에 따른 언행도 중요하다. 그러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한 명 한 명의 국민에 대한 사랑의 신뢰도를 국민이 지각할 수 있게끔 다각적으로 피부에 와 닿게 몸소 입증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