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함께

욥의 깊은 절망과 나의 삶

sonjengho 2012. 10. 4. 11:09

욥의 깊은 절망과 나의 삶  2012/10/04 목 류의근

 

[본문]

3:1드디어 욥이 말문을 열고, 자기 생일을 저주하면서 2울부짖었다.

3내가 태어나던 날이

차라리 사라져 버렸더라면,

‘남자 아이를 배었다’고

좋아하던 그 밤도

망해 버렸더라면,

4그 날이 어둠에 덮여서,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도

그 날을 기억하지 못하셨더라면,

아예 그 날이 밝지도 않았더라면,

5어둠과 사망의 그늘이

그 날을 제 것이라 하여,

검은 구름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낮을 어둠으로 덮어서,

그 날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더라면,

6그 밤도 흑암에 사로잡혔더라면,

그 밤이 아예

날 수와 달 수에도 들지 않았더라면,

7아, 그 밤이

아무도 잉태하지 못하는

밤이었더라면,

아무도 기쁨의 소리를 낼 수 없는

밤이었더라면,

8주문을 외워서

바다를 저주하는 자들이,

리워야단도 길들일 수 있는

마력을 가진 자들이,

그 날을 저주하였더라면,

9그 밤에는 새벽 별들도 빛을 잃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도 밝지를 않고,

동트는 것도 볼 수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10어머니의 태가 열리지 않아,

내가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이 고난을 겪지 않아야 하는 건데! (욥기 3:1-10)

 

[요약]

드디어 욥은 자기의 재앙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자신의 출생을 저주한다. 그의 울부짖음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내가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하나님이 그 날이 없앴으면 좋았을 것이다. 내가 잉태되던 그 날 밤이 타임라인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강력한 세력이 그 날을 저주했어야 했다. 그 날 밤이 지나 날이 밝아서는 안 되었다. 이런 고난을 당할 바에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성찰]

욥이 겪는 절망과 고통을 표현하는 언어는 매우 시적이고 문학적이다. 이 부분은 역대 유명한 시인이나 작가 이상의 표현력을 담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다. 성경이 문학책으로 널리 연구되는 분명한 이유 중의 하나를 욥의 절망적 고백 언어에서 찾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또 주목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나의 요약은 욥의 언어적 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욥이 직접 고백했다기보다는 욥이라는 인물을 통해 욥기 저자가 그러한 고통과 절망을 문학 양식을 빌어 표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문학적 능력과 철학적 사고력이 여간하지는 않을 것이다. 욥기 저자의 문학적 언어에는 욥의 고통을 인위적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감지된다. 감수성 높은 독자는 이미 그러한 시적 언어 표현에서 욥의 고통을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논리적 차원과 설명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욥기 저자는 언어적 기교를 부리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실천]

아무튼 자기가 겪는 고통이 어떠한 것인지 또 그 깊은 절망을 토로하는 욥의 처지를 상상할 수 있다. 욥의 고백과 같은 고백을 하게 하는 어떤 인생의 사건을 나는 만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논의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사의 직간접 경험에서 우리는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고백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얼마나 한스럽고 가슴이 찢어졌으면 그렇게 말하겠는가. 태반이 그런 참담함과 비탄함을 욥의 정도까지는 가보지 않았을 것이다. 닥친 재앙에 망연자실하여 삶의 의욕과 희망을 잃어버린 실존적 한계 상황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이번 태풍에 재산을 잃고 농작물 피해를 당한 수재민들이 욥과 비슷한 심정을 가질 수 있다. 이토록 지독한 삶의 고난과 시련을 비껴가 있고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현재의 자기 처지를 한탄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데가 있다.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긍휼, 우는 사람들과 같이 울어주는 공감은 예수인이 가져야 할 매우 우수한 덕목이고 탁월성이다. 모든 예수인은 자신의 실존적 상황을 욥이 처해 있는 절망의 실존적 상황과 평행시킴으로써 자기에게 닥친 삶의 고난과 시련을 극복해 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매우 어려운 삶의 위기 상황을 겪는 것을 마치 욥이 어둠과 사망의 그늘 아래 처한 것처럼, 마치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한 것처럼 평행시킬 수만 있다면 어떠한 위기 상황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그 정도쯤은 우리 스스로가 취해야 할 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