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정치 참여
[종교개혁 495주년 기념 포럼 참고자료 ①]
한국교회의 정치 참여
“모든 것이 정치지만 그러나 정치가 전부는 아니다”란 구호는 정치의 본질, 권능, 한계를 정확히 갈파하고 있는 말입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의 간섭과 제한을 받지 않는 인간 삶의 영역은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국가의 목표와 전략과 같은 거대 담론에서부터 우리가 타고 다니는 지하철 요금 액수와 같은 일상의 삶에 이르기까지 전부 정치의 결정을 따릅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란 거대 괴물 리워야단과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 삶 전부를 다스리는 주술적 존재입니다. 정치란 결코 무시하거나 소홀히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정치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정치에 대해 어떤 신성과 마성을 부여함으로써 정치를 우상의 제단에 모시려는 시도에 대해서 끊임없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 한국 개신교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한때 세계 교회가 경이로운 눈길로 바라볼 정도로 파죽지세로 교세 성장을 경험했던 한국 개신교가 아주 짧은 시일 내에 큰 위기가 봉착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이유 중 하나를 한국 개신교의 정치적 실패,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현실 정치 참여의 실패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특별히 보수적인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정치적으로 보수를 가장한 극우 혹은 수구 집단과 보조를 같이하는 한국 개신교의 정치적 행보가 우리 사회의 비판적 지식인들, 그리고 의식 있는 젊은 층으로 하여금 교회에 대해서 염증을 넘어서 환멸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치란 근본적으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주관하는 괴물과 같은 실체이기에 당연히 종교도 그 영향력 안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종교가 정치와 상호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정치의 영역에 참여하여 정치 자체를 변혁시키고 또 정치를 통해 인간 삶의 제 영역을 변혁시키는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결국은 종교 본연의 세상을 이롭게 하는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데, 오히려 한국(보수) 개신교회는 그 특유의 우파적인 인식과 태도로 인해 정치 자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치의 영향력 안에 있는 이 땅의 민초들의 삶 자체의 진보와 개선에 거의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퇴행적인 행위의 누적이 결국은 이 땅의 민초들로 하여금 사회의 불의한 현존 질서를 파수하는 데만 여념이 없어 보이는 개신교회로부터 마음과 등을 돌리게 하는 주요한 단초가 된 것입니다.
좀 더 노골적이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상 지난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종단하면서 한국 (보수) 개신교회가 보여준 정치적 태도와 주장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것이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개신교회는 (1) 정교분리라는 구실 하에 부당한 정치 권력에 굴종했고 (2) 국가조찬기도회를 내세워 실제로는 불의하고 부패한 정권을 종교적으로 정당화시킴으로써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상당한 이익을 획득했고 (3) 설교와
간증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자신이 지지하는 보수적 정치 세력을 미화하고 영웅화하는 일에 적극적이었으며 (4) 그 대표적인 예가 장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기독교 고유의 예전인 예배와 집회를 오용하는 일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했고 (5) 가장 최근에는 뉴라이트 운동이나 기독당 설립 운동을 통해 현실 정치 세력의 홍위병 내지 직접적인 정치 세력화를 시도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행위의 배후에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정치적 가치나 이념에 대한 철저한 각성과 복무의 태도가 아니라 실제로는 현실의 지배 세력과 결탁하여 교회가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저급한 욕망의 배설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그간 한국 개신교회는 한편으로는 저급한 수준의 정치 이해와 참여를 통해서 정치의 엄중성, 역동성을 간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이런 수준의 정치 참여에 몰입함으로써 정치를 우상화하는 역설적 이중성을 민낯 그대로 노출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땅의 정치적 현실에 고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눈 밖에 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것이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가 이 땅에서 특별히 지식인 그룹에서 미움을 받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보수) 개신교회를 지배하는 이런 정서와 태도는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요? 저는 그것의 뿌리가 아주 멀리는 주후 4세기부터 시작된 콘스탄티누스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콘스탄티누스주의란 주후 4세기에 로마 황제의 자리에 등극한 콘스탄티누스가 로마 제국과 기독교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만들어낸 정치적 종교적 가치 체계 일체를 뜻합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황제권을 강화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독교의 후원자 역할을 자임한 후 기독교는 기존의 현실 세계에 대한 저항적 정신과 태도를 상실한 채 제국을 위한 종교 나아가 제국 자체의 종교로 변질되었습니다. 이 시기 이후 교회는 국가로부터 하사받은 기득권을 지키고 또 제국의 방위와 통치에 대한 책임을 국가와 함께 공유하면서 그런 자신들의 선택과 행동을 변호하기 위한 신학적 논리들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콘스탄티누스 시대는 예수에게 갑옷을 입히고 칼과 방패를 쥐어 전쟁터로 내몬 역사적 분기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콘스탄티누스의 등장으로 인해 황제가 교회의 교리 정립에 간여하게 되었고 그 결과 황제가 믿는 것이 곧 정통이 되었습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이때부터 로마 제국이 믿는 것, 로마 제국의 기득권을 지키는 데 더 유리하고 효율적인 것이 정통이요 진리인 시대가 개막된 것입니다. 신학자 하비 콕스는 이 시대의 교회가 이런 변신을 할 수 있었던 근본 이유는 교회가 “제국 선망”이라는 심리적 질병에 감염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갈파합니다. 즉 교회가 세속의 정치적 힘과 그 질서가 가지는 유형의 기득권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교회는 초월적이고 묵시적인 정치적 역동성을 모두 상실하고 세속 국가인 로마 제국의 하부 조직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교회의 정치적 실패는 교회가 국가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이익을 종교적으로 옹호하고 거기에 대한 답례로 국가와 사회의 지배 질서로부터 떡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동시에 자신들이 획득한 떡 부스러기를 사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 시대의 한국(보수)개신교회의 정치적 태도 안에 고스란히 부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의 가장 대표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이 지난 2007년의 한국 개신교회의 MB 대통령 만들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런 식의 현상적 물질적 이해 관계를 매개로 하여 정치와 종교가 탄탄하게 엮여 있는 황제 숭배의 정치 또는 제국의 정치에서 탈피하여 어떻게 한국 개신교회가 올바른 성경적 정치를 추구할 것이며 또 어떻게 그것을 현실 정치 안에서 점진적으로 구현해갈 수 있을까요? 이 대목에서 잠깐 로마 황제의 정치와 예수님의 정치를 비교해보는 것이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신약성서 복음서는 예수님의 정치와 로마 황제로 대표되는 세상 권력의 정치를 다각도로 비교하고 대조합니다. 이를 위해서 복음서가 사용하고 있는 아주 흥미로운 문학적 신학적 기법 중 하나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건을 로마 황제의 대관식 장면에 빗대어 묘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로마 황제의 즉위식 순서(장면)는 통상 다음과 같습니다.
(1) 근위대(6천 명)가 황제의 관저에 모인다. 차기 황제가 근위대 중앙으로 인도된다.
(2) 근위대가 유피테르 카피톨리노스 신전에서 자줏빛 예복을 가져와 차기 황제에게 입힌다.
(3) 근위대가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지르며 차기 황제를 승리자로 맞이한다.
(4) 근위대가 거리에서 행진을 시작한다. 중앙에는 차기 황제가 따라간다. 그의 뒤로는 황제 의 판테온 입성을 죽음으로 기념할 희생 제물인 황소 한 마리가 끌려간다. 황소 옆에는 도살용 도끼를 든 노예가 따라간다.
(5) 행렬은 로마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카리톨리노 언덕(머리 언덕)까지 이른다. 이 언덕 위에는 유피테르 신전이 있다.
(6) 차기 황제는 신전 제단 앞에서 노예로부터 몰약이 섞인 포도주 잔을 받는다. 황제는 황제직을 수락한다는 의미로 포도주 잔을 받았다가 그냥 돌려준다. 그러면 노예도 그 잔을 마시지 않고 제단이나 황소에 뿌린다. 포도주를 뿌린 직후 황소는 희생 제물로 도살된다.
(7) 차기 황제 오른쪽으로는 제국의 2인자가, 왼쪽으로는 제국의 3인자가 붙어 선다. 황제 는 그들과 함께 유피테르 신전의 보좌로 올라간다.
(8) 군중이 새롭게 왕위에 등극한 황제에게 환호를 보낸다. 이때 신들이 승인의 징표로 비 둘기 떼나 일식 같은 신호를 보낸다.
이번에는 신약성서 복음서가 묘사하는 예수님의 수난과 처형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위치한 로마 총독의 관저로 끌려가신다. 그 곳에는 (약 200명 정도의) 로마 근위대가 운집해 있다.
(2) 로마 근위대가 예수님에게 가서 왕관과 홀(낡은 막대기)과 자줏빛 옷을 준다.
(3) 근위대는 예수님에게 “유대인의 왕”이란 호칭을 부르면 조롱하는 방식으로 경의를 표한다.
(4) 예수님의 처형을 위한 행진이 시작된다. 황소 대신 예수님이 직접 제물이 되기 위해 걸어간다. 근위대가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예수님을 매달 십자가를 짊어지게 한다.
(5)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머리 언덕)에 오른다.
(6) 근위대는 예수님에게 신 포도주를 먹이려고 하나 예수님은 거절한다.
(7) 예수님을 처형할 때 오른편과 왼편에 한 명씩 두 강도가 함께 처형된다.
(8) 예수님이 운명할 때 하늘이 어두워진다.
이 비교를 통해서 대번에 우리는 복음서의 저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일부러 로마 황제의 즉위식 장면에 맞추어 정교하게 고안된 내러티브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가 로마의 머리 언덕에서 세상 제국의 황제 자리에 등극했듯,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머리 언덕에서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온 우주의 황제 자리에 등극하셨습니다. 나아가 복음서 기자들은 이런 묘사를 통해서 실은 예수님의 정치와 로마 황제의 정치를 적나라하게 대조하고 비교하는 것입니다. 즉 로마 황제로 대표되는 세상의 정치는 한 사람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모든 사람의 생명과 권리를 짓밟고 제거하는 식의 무한 경쟁에서 승리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정치는 모든 이의 유익과 복지를 위해서 자신의 존재 전체를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이한 두 정치 체제의 비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될 당시 십자가 밑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로마의 백부장(황제 숭배의 상징적 존재)이 예수님을 가리켜 (당시 오직 로마 황제에게만 적용되던 호칭인)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릅니다(막 15:39). 요약하자면 세상의 정치는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남의 것을 탈취하고 착취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면 예수님의 정치 곧 예수님을 머리로 고백하는 교회의 정치란 타자의 유익을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부인하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제물로 바치는 정치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이런 성경적 정치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시에 성경적 정치가 이 땅의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모색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해볼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출전: 김근주 외 『정치하는 교회, 투표하는 그리스도인-2012년 대선과 한국 개신교회의 정치 참여』, 새물결플러스, 2012년, pp. 6-13, 이 글의 제목은 자료 제공자의 첨가]
2012년 9월
새물결플러스 발행인 김요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