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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평론

문안단일화 성사 연대 기도 운동 선언문

한국 예수인간의 회개를 촉구하고 문안단일화 성사 연대기도를 요청하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가입한 적지 않은 교단이 탈퇴한 기독교 단체에서 대선 모 후보를 지지한다는 말이 떠돈다. 자타가 공인하다시피 한국 기독교인과 기독 단체들은 대다수가 우경화된 정치적 선택을 해 왔다. 18대 대선에서도 그 추세는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과 비상 섭리가 없으면 별 변동이 없을 것이다. 역으로, 그 섭리와 간섭을 우리가 해 내야 한다는 뜻도 된다. 물론 한다면 그 분이 내안에서, 내안에 그분이 해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할 것인가?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제물로서 내놓아야 할 것이다. 우리 각자의 제물은 무엇인지 심사숙고하고 거룩한 산 제물, 자기가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를 바쳐야 할 것이다. 고난 없이 영광은 없을 것이므로.


왜 그들은 동일 예수를 믿으면서도 우경화하는 선택을 할까? 예수가 우경화 인물이고 예수의 가르침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우측 클릭을 명하는가? 예수가 보수파 지도자인가? 예수의 삶과 행동이 보수적 궤적을 그리고 있는가? 예수의 공사역의 앞길을 예비한 세례자 요한은 당시의 권력자 헤롯왕이 살아 있는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한 행동에 대해 정치 윤리적 문책과 비판 행위를 하다가 결국은 참수당했다. 그는 반체제 인사였다. 그리고 예수는 이러한 반체제 인사가 베푸는 세례를 받았다. 이 점만 보아도 예수는 당시 이스라엘을 억압하던  로마제국 지배 체제를 지지하고 찬성하는 자는 아니었다. 예수의 사회적 삶의 첫걸음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공언에서 보듯 기존의 민중을 지배하는 사회 체제와 통치에 거스르는 통치와 주권을 선포했다. 현존하는 권세와 정사와 보좌와 지배와는 다른 통치를 공표했다. 따라서 예수의 최초의 생명의 말씀은 최소한 줄잡아 말해도 대항 체제 또는 대안 체제를 지시한다.


무엇에 대한 대항인가? 기존 체제에 익숙해져 있는 삶과 생활과 행습, 단적으로 말해서 옛사람, 옛속성, 옛자아에 대한 대항이다. 안나스와 가야바 즉 장인과 사위가 장기 세습 집권하여 온갖 부와 이를 다 누리는 성전 권력 체제, 로마제국 권력체제와 결탁해 있는 종교적 지배 계급, 권력 브로커 엘리트 계층들, 서민과 기층 민중들을 경제적 질고에 빠뜨리는 경제적 지배 부자 계층들에 대한 일깨움이다. 현존하는 지배 체제, 사회 현실의 매트릭스와 그 비인간성과 거짓됨에 눈뜨지 못하고 별 수 없이 하루하루 잔명해 가는 서민 무리들을 향한 비통한 목소리가 담긴 예수의 공산당 선언이다. 잘 살든 못 살든 너희 모두는 기존 지배 체제에 대항하지 못하고 구조적으로 조직적으로 순응하면서 살아 왔으므로 이제 내가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과 이상에 귀를 기울이고 동참하여 새로운 사회를 향해서 전진하자는 것이다. 이 일에 동참하지 않는 자, 무관심한 자, 방관하는 자, 반대하는 자 등등은 모두 죄인인즉슨 따라서 회개해야 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 점에서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죄인이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자백하지 않는 한은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 이나 조건은 없다. 하나님 나라를 믿고 참여하는 일은 자기가 타자에 대해서 더러운 손이라는 것,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각성하지 않는 한은 불가하다. 인류가 죄인이라는 것은 새하늘 새땅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않는 동안은 부득이하다.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자가 하나도 없다는 말은 어느 누구도 서로에 대해서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 땅이 새하늘 새땅이 아닌 이상 우리 모두는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죄인이다. 새하늘 새땅 혹은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


한국의 예수 인간의 사회적 특성은 자기가 타자에 대해서 또는 사회에 대해서 죄인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리학적 용어로 표현하면 자기의 사회적 공공 현실에 대한 자기 인식 또는 이해에 인지부조화 현상이 뿌리 박혀 있다. 회개를 촉구하는 예수의 제일성의 사회적 의미를 진지하게 이해한다면 모 후보의 사회적 대통합의 광폭 행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국민에 대해서 교만한 자세인가 하는 것을 반성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호응하는 정치인과 지지자들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저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니 용서해 달라는 예수의 아픔이외 별 달리 대꾸할 말이 없다. 한국 예수 인간들의 우경화된 정치적 선택과 행동은 회개를 촉구하는 예수의 말에 담겨 있는 사회적 의미와 메시지를 오로지 예수 믿고 천국에 가자는 말로 바꿔치기한 결과이다. 예수의 복음을 그렇게 단선적으로만 해석하는 한, 한국 예수인간들의 박정희 독재 정권 지지와 향수와 그 <가문 정치>의 후예가 될지 모르는 박근혜 후보 지원 의사 행위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아니 논리적 필연성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그를 거부하고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에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2000 년 전의 고대 이스라엘 사회를 향해 부르짖었던 예수의 복음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하는 선언은 2000년 후의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정의ㆍ평등ㆍ평화ㆍ생명ㆍ상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불의, 불평등, 불화, 죽임, 독식의 논리가 판치는 현재의 우리 사회가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로서 보여 주어야 할 지향점이다. 그것이 이번 대선에서 한국의 예수 인간들이 추구하고 달성해야 하는 목표점이다.


어떤 이들은 약 20 년간의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가지고 있고 근대화의 경제 개발을 최대 치적으로 자랑하면서 그 시대를 미화하고 불가피한 최선의 정권이었다고 설파한다. 다른 어떤 이들은 그 아련한 향수는 소위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고 근대화는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빛 좋은 개살구로 처리하는 댓가를 치렀으며 그 정권은 피할 수 있었던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반박한다. 어떤 정권이 군사 독재 정권으로서 치적이 훌륭하면 또는 그 경제적 열매가 우수하면 그 죄악들이 모두 면죄되는가? 시중말로 끝이 좋으면 다 좋은가? 한 국가와 사회 체제가 그런 이치와 대의로 운영되고 계승되어야 하는가? 설령 고속 경제 성장의 치적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그 반대 급부 때문에 겪고 있는 사회 곳곳의 허다한 상흔과 고통은 어떻게 보상하거나 속죄할 수 있는가?


박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 정권 전 기간 약 20 년 동안 평균 약 1.5년마다 1961년의 군사 쿠데타를 시작으로 비상 계엄, 위수령, 휴업령, 비상 사태, 유신 선포, 긴급 조치 등 각종 폭압적 조치를 취한 역사적 사실을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평가한다면 후속 미래 정권은 때가 여의하다면 그러한 독재 정치를 반복해도 좋다는 뜻인가? 아버지 박정희 정권의 죄상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하며 차기 정권에서는 그러한 폭정을 극복하는 선정으로 섬기겠다고 왜 선언하지 못하는가? 국가의 최고 지도자 후보로서 과거의 역사의 죄악을 단죄하고 심판하며 정결히 하지 않고서 어떻게 국민 대통합의 새 시대를 열 수 있는가? 과거의 독재 장기 집권의 흔적과 결과에 대한 진리와 정의를 수용하고 시인하는 것이야말로 대선을 거머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한국의 예수인간들은 바로 이러한 죄악의 자백과 시인과 바로 잡음을 박 후보 자신과 그 정당과 지지자를 대신하여 속죄하는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특히 박 정권의 고속 성장과 불행하게 사망한 육영수 여사에 대한 연민의 향수로 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장년층과 노년층의 의식 세계에 구조화되어 있는 반역사성, 반시대성, 반사회성 및 그 세계의 지배자들과 악한 영의 권세를 불사르는 대적 기도를 드려야 한다.


과거의 역사와 연루되어 있는 면에서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박 후보보다 나은 처지에 있다. 그 둘 가운데서 문 후보는 노 정권의 핵심 인물로서 그 실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안 후보가 가장 나은 처지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역으로 정권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가장 불리하다. 그러나 공통점은 현 정권의 실정과 악행을 심판하고 노 정권의 여러 가지 정책 실패와 오류를 재현하지 않고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권을 심판하고 국민의 정치 불신과 부패를 불식하고 경제적 교육적 양극화를 민주화로 해소하고 무엇보다도 안철수 현상이 상징하는 국민의 여망과 바람의 의의와 가치를 중대하고 결정적으로 사고할 줄 알고 하나님의 공법과 정의와 인애의 정치에 더 근접할 수 있는 국가 지도자가 누구인가를 심각하게 따져 묻고 가려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양강전이 아니라 삼파전이 될 수 있다.


문 후보와 안 후보는 국민의 지지의 추이에 따라서 대차가 없으면 어느 누구도 자신을 내어놓지 않을 수 있는 최악의 처지에 내몰릴 수 있다. 가장 불행한 경우의 수이다. 문과 안은 단일화에 실패하고 각자 완주의 길을 택할 수 있다. 이러한 비극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원로들이 중재에 나선다고 한다. 그들이 완주의 길을 선택할 때 현대 한국사의 비극은 임신되는 셈이다. 그것은 흔히들 역사의 대역죄인이라고 말해지는 것이요 신앙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 앞의 죄악이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역사의 주이신 예수 앞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현재의 우리가 할 일이다. 일이 일어나고 수습용으로 기도할 것이 아니라 선제적으로 이 일을 막아서고 이 나라와 민족이 바른 정치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문안 단일화를 기도해야 한다. 물론 그 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아서 별도의 길을 열어놓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때 가서 대처할 일이고 현재로서는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제목은 그것이 최상의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그들이 각자 완주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역사의 소명 앞에, 시대의 정신 앞에 일탈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기에 우리는 역사의 불행을 선제하고 예수의 십자가상의 살신성인 같은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도로 간구하고자 한다. 이제 10월 20일은 D-60일이므로 D-59일인 10월 21일 주일부터 단일화가 완료될 때까지 조찬, 오찬, 만찬에 대선에 대한 관심과 책임 있는 모든 이들이 연대하여 합심으로 기도할 것을 요청하고 선언하는 바이다. 이러한 기도 운동이 마가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기쁜 소식을 가져올 수 있기를 고대한다. [이글은 인터넷 언론 뉴스앤조이에 게재되었습니다.  www.newsnjoy.or.kr

                                                                                                                                                                                                    2010/10/21 

성서한국 부산연대 대표 류의근